책(book)2011/11/13 20:59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만난 책 '낙동강'
처음엔  낙동강 전선의 요약정리편인줄 알고....관심 밖에 두었다가  회사 선배가 구해줘 다 읽게된 책이다.

6.25 관련 서적을 몇권 안봤지만  이렇게 까지 디테일하게 묘사된 전쟁사는 처음만났고 1권을 읽을때 부터 눈을 뗄수가 없었다.

저자는 낙동강 전선에서 1사단 학도병으로 참전하면서 겪고 본 참상과 경험을 바탕으로 막대한 자료와 인터뷰 등을 통한 실증적 자료에 입각해 각전선의 흐름을  아주 훌륭하고 디테일하게 기록하고있다.  인천상륙작전을 기점으로 낙동강 전선을 돌파해 북으로 반격해 가는 모습을 끝으로 마무리 지어진 아쉬움은 있지만 기존의 한국전쟁사료들을 일일히 비교 대조 분석 기록했으며 마치 6.25전쟁 백과사전같은 느낌마져 들게 하는 귀중한 책이 될것으로 생각된다

역사가 주는 흥미 중에 하나는 변하지않는 불변이란 사실이다. 더 재미난건 이미 밝혀진 사실에 새로운 사실이 자꾸 자꾸 밝혀지면서 더 명확해 지고 퍼즐이 맞아 들어가는 듯한 흥분을 함께 느끼게 되는데 있다..하지만 단점이있다면 시간이 흐른만큼 역사는 더 깊어지고 깊은만큼 더더욱 알아내기 힘들어지는 법이다..

멋진 책이다....
Posted by 콩기름
책(book)2011/04/24 16:03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만 발취해 아래에 옮겨 보았다.


미래사회가 점점 복합적이고 불확실한 위험사회로 가게되고 개인의 자유의지가 커지는 만큼 '존재의 불안함'도 커질 우려가 있다. 이럴수록 가장 필요한것이 '자아 정체성' 이다.
자아 정체성은 세상과 부딪치며 실수를 한기억, 그것의 피드백으로 얻어진다. 쉽게 말해 많이 넘어져 본 아이가 그만큼 자기 정체성이 강하다. 앞으로 분명 자아 정체성이 뛰어난 사람들이 성공한다.


1.부모 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진단해 보라

부엌에 들어가는 일조차 익숙하지 않은 엄마가 어떻게 아이에게 먹일 이유식 준비를 하겠는가.
우선 남편과의 관계가 원만한가부터 짚어보자.

2.아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엄마가 전해 주는 사랑을 느끼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에 대해 신뢰를 쌓아야 할 무렵에 사고력(참고로 사고력은 서너 살 무렵에 형성된다)을 요하는 학습을 무리하게 강요받은 나머지 마음의 병을 얻게 된다.

아이들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예를들어 손가락을 빠는습관.
이는 아이가 무언가 내적인 조절이 되지 않았을때, 나름의 해소책으로 내놓는 경우가 많다. 즉 해소되지 않은 불만을 나름대로 견디는 것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볼때 어린시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는 일이다. 이는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배고플때 젖을 먹고, 소화를 잘시키며, 배설을 제대로 하는 등의 생물학적인 요구가 제대로 조절되면 아이는 나는 사랑받고 있다  세상은 참 편안한 곳이다' 라고 느끼게 되고 그것이 축적되어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아이 기르는데 느림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신적인 문제이든 타고난 바탕이 조금 어려운 아이라도 엄마나 아빠의 성격, 집안분위기, 경제적여건 등 성장환경이 좋으면 큰병이 되지않으며 아이의 성장은 사선이 아닌 계단형태로 계속된 기다림과 자극 속에 어느순간 갑자기 확 변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부모가 할수 있는 일은 내 아이의 타임 테이블을 믿고 방해 요수를 제거해 주는 일이다. 즉 아이의 긍정적인 자아상이 침해받지 않도록, 자신감이 없어지지 않도록,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지켜 줄 따름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말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기 때문에 절대로 서두르면 안된다.


어린시절에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정서적인 안정이다. 특히 3~4세 이하의 영유아들에게는 부모의 정서적인 접촉이 인격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너무 빨리 부모 품에서 떨어질 때 아이가 느끼는 상실감과 불안은 그 어느 것으로도 충족될 수 없다.
아이에게 가장필요한것은 지적인 교육이 아니라 감성적인 교육이기에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과 매일 포옹하는 것이 좋다.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서부 히말라야 고원에 자리한 아름다운 고장 라다크에서는 누구도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서 무제한의 조건없는 사랑을 받는다. 충분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이 더 빨리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뜻한다.

과거 우리선조들과 라다크의 공통적인 육아 원칙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 마음껏 자신의 욕구를 펼칠 수 있도록 가만히 놔둔다는 것이다. 그저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이 있을 따름이다.

오랜만에 본 조카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엄마를 보고 아이는 엄마의 애정을 다른 사람에게 빼았겼다고 느끼며 아이는 결국 똥오줌도 제대로 못가리는 퇴행현상으로 나타났다
이럴때 엄마는 일주일 정도 실컷 아이를 데리고 놀아주고 평소와 다른 애정을 쏟으며 아이가 퇴행현상을 일으켜도 무조건 감싸 안아 준다면 기존에 있던 나쁜 습관까지 사라지는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언어발달은 아이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만 3세 전후가 무척 중요하다. 이시기에 제대로 발달을 하지 못하면 말을 못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성, 대인 관계 등 여러가지 문제가 도미노 처럼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어느 발달이건 시기가 있으며 그 시기에 맞춰 적절한 자극을 주었을때 120퍼센트의 적응력을 보이며 발달이 이루어진다.

억지로 시키는 조기교육은 생각 없는 아이로 자라게끔 만드는 지름길인 것이다.
미국의 한 유치원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장난감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떨어 뜨리므로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위험한 이유는

인격이 덜 형성된 어린시기에 부모가 이를 무심코 지나칠 경우, 어른이 되어 성격이나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이는 돌이 지나면 언어가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동시에 사회적 판단력이 생긴다.
이시기에 아이들은 아직 스스로의 판단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능력이 없기 때문에 혼자서 마음대로 하다가도, 그게 제대로 안 되면 엄마에게 의존하여 해결하고자 한다. 그런데 아이가 엄마의 도움을 필요로 할때 제대로도움을 주지 못하면 아이는 심한 불안을 느끼게 되고,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삶의 첫 시도를 포기하게 된다.

아이들은 유아기 때부터 맺어진 부모와의 관계를 기본으로 다른 사람이나 또래들과 어울린다.그러므로 아이들이 부모와 긍정적인 관계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들의 사회성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주위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어야한다.
엄마 역시 개방적인 자세로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릴 필요가 있다.

현명한 부모에게 육아란 없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자



아이를 느리게 키우는 부모들의 기본 덕목 4가지.

1.절대적인 사랑
모성은 길러지는 것이며 아이를 사랑하는 데도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엄마의 땀과 정성이 지속될 때, 비로소 보다 성숙한 사랑을 키워 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절대적인 사랑이 바로 현명한 엄마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된다.
2.민감성
3.반응성
영유아기에는 특히 아이의 사인이 먹고 자고 배설하고 노는 기본적인 요구와 관련된 것이 많은데, 엄마가 아이의 사인에 재빨리 반응해 주지 않으면 성격 형성에 심각한 장애가 따르게 된다.
4.일관성
이랬다 저랬다 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의 기질은 점차 까다로워진다. 기분이 좋을땐 한없이 잘해주다가도 문제만 생기면 엉뚱하게 아이에게 화풀이하는 엄마들이 많다. 항상 머릿속에 아이와 자기 주변 상황을 때어놓고 생각하는 연습부터 하자.

부모는 아이가 세상에서 만나는 최초의 교사이며, 그 영향력은 그 어떤 존재보다 막강하다.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절대적이며 친밀한 존재가 바로 부모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교육 이론들은 아이들에게 간섭하지 않는 태도의 긍정적 가치를 너무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버트런드 러셀)


호주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남보다 빠른 발달을 보이거나 어느 부분에 있어 특출함을 보일 경우 일부러 쉬쉬하며 이를 숨긴다. 아이가 그로 인해 부담스러워하거나 상처받는 걸 두려워해서다.
감출 건 아이 자신조차 모르게 감추면서, 그 안에서 아이의 능력을 살리는 게 더 옳은 길이 아닐까 싶다.

아이큐테스트는 애초에 정상아와 지진아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허상에 불과하다.
영재라는 오해속에 칭찬받아 으쓱했던 마음이 엄마를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급기야 틀리면 안 된다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으로 까지 발전하게되었고 무조건 암기하고 보는 습성이 생기다가 일을 그르치게 된다.

만 3세 까지는 오감을 통한 학습이 중요하고 이 시기는 정서적 측면이 크게 발달하므로 아이가 즐겁고 행복하게 생활하도록 도와야하며 엄마와의 스킨십은 아이의 정서적 안정에 있어 매우 큰 역할을 한다.

만5세까지는 생각할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 좋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 생각하는 힘이 저절로 키워진다.

아이의 학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동기부여

서로 이용하거나 이용당하지 않으면서 인간관계를 맺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바로 학교



맞벌이  엄마가 지켜야할 원칙 4가지
1.일주일 중 하루는 오로지 놀기 위한 날이다.
2.주 1회든 월 1회든 아이와 규칙적으로 공부한다
3.아이가 정말 필요로 할땐 예외 없이 달려가라

어린시절의 경험은 훗날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고, 그의 자식에게 까지 영향을 미친다.

남자아이들은 아빠의 모습을 보고 이를 삶의 모델로 삼게 마련이다. 즉 어린 시절 보아왔던 아빠의 모습이 그대로 잔상으로 남아 훗날 성인이 되었을때 표본으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시간과 관심 속에는 엄마의 희생이 따라야 하며, 또한 그 안에 아이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욕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것이 아이 위조로 맞춰져야만 그 시간과 관심이 비로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아이에게 필요한 일정시간 이란것이 있다. 무언가를 가르치려 들기보다 아무런 욕심없이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그런 시간 말이다

아이의 잠재력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아이가 조금 더딘 발전을 보이더라도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아이가 자신감을 잃지 않고 세상과 당당하게 마주하면서 발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아이들은 자기가 감당해 내기 벅찬 상황에서, 그게 힘들다는 또 다른 표현으로 거짓말을 하곤 한다. 이럴때 거짓말 자채를 탓하기 전에 근본적인 동기를 찾아 그것부터 해결해 줘야 한다.

아이와 부모 사이에 신뢰가 있어야만 한다. 부모가 어떤 원칙을 일방적으로 가르칠 때 즉, 훈육 을 해야 할 순간에 평소 혼만 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그 말을 잔소리로 흘려 듣는다.
부모 말을 듣게 하는 그 힘은. 초기에 부모가 아이의 말을 끊임없이 들어주고 배려하던 자세에서 비롯된다.

Posted by 콩기름
책(book)2011/01/02 14:31


롬멜은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장군이다.
별명과 같이 꾀가 많아 전장을 능수능란하게 누비고 다녀 얻어진것이지만, 그만큼 자기에게 철저하고 적과 아군에게 존경받았다는 의미이기도하다.


오늘날 정경계의 화두는 단연 리더십이다. 한사람의 리더십으로 나라와 기업의 흥망이 결정지어지는 전문ceo 시스템은 이렇듯 전쟁을 치르는 장군들에게서 많은것을 배우게한다.
특히 롬멜과 같이 프로이센 귀족출신이 아니면서 독일핵심 주류에 들어간 자수성가형은 모든이들의 본보기가 되고있다.


아무리 유능한 장군이라도 다양한 재능을 한꺼번에 가지긴 힘들지만 롬멜은 이를 충족게 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롬멜은 1차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하위장교로써 일반사병들과의 소통을 통해 많은것을 익히고 배웠다.
부대를 지휘할때는 언제나 앞장서 솔선수범했으며, 막연한 정보보다는 눈으로 보는 철저한 정찰을 통한 공격은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1차세계대전에 패하면서 체결된 굴욕적인 베르사이유 조약은 막대한 배상금과 군병력의 축소로 이어 졌지만 그는 군에서 남게되어 좀더 폭넓고 깊이있는 지휘관의 소양을 익히게되었다.


2차대전의 그림자가 본격적으로 드리워지면서 프랑스침공 슐리펜계획이 만슈타인에의해 낫질작전으로 바뀌면서 롬멜은 7기갑사단으로 선봉에서 유령사단이라는 별명을 또 얻게된다.
당시 독일은 기갑과 차량화를 통해 전격전을 펼쳐 적을 혼란에 빠뜨리며 우회기동을 통해 상대를 제압하는 속도전을 보여주었다.


반면 추축군의 동맹이던 이탈리아는 아프리카로 진출해 땅따먹기에 열을 올리고있었지만 허약한 체질이라 영국의 상대가 못돼 결국 히틀러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이때 롬멜이 북아프리카로 파견되면서 그의 화려한 진면목이 펼쳐지게된다.
롬멜의 임무는 전장을 확대시키기보다 선전용도구로 여기는 이차전선이 될것이 뻔한일이였지만 롬멜은 전혀 그럴생각이없었으며 그는 이집트까지 진격한 다음 그곳에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통해 위로 올라가 카프카스 지역의 소련군을 위협할 생각이었다.



솔선수범하고 자기가 할수없는 일은 부하들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그의 지휘 방식이었다.
롬멜은 늘 전투에서 가장 결정적인 지점에 있고 싶어했으며, 대개 인격과 카리스마를 통해 상황을 풀어나갔다....본문 중(p81)



이대목을 보면 롬멜의 저돌적인 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급장교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자세지만 더큰 그림을 그리는 장군으로써는 지휘부에서 하급부대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분석해 적시적소에 부대를 운영함이 더 바람직할것이다.



기갑사단의 장교라면 명령을 받을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전체 작전계획의 틀 안에서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한다...본문 중(p92)

 

독일 장교중에 롬멜과 같은 생각과 지휘방식으로 전과를 많이올린 초급장교로 요하임파이퍼 중령 문득생각난다. 그는 무장친위대 이지만 전격전이 무엇인지 간파했으며 전차운용면에있어서 항상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며 상부로부터의 명령이 현장과 맞지않으면 사후보고하는(약간 제멋대로).. 시간이 곧 목숨임을 알고 있었던 군인이였다. 전후에 말메디학살의 책임을 물어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SS의 몇안돼는 뛰어난 군이이다.

 

유령사단인 제7기갑사단이 거둔 전공들은 전직 보병이 탁월한 기갑부대 지휘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그의 추진력과 결단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그이 용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언제나 앞장서서 진격 속도를
유지하고 주도권을 뒤고 적이 적시에 반격을 하지 못하게 막는 지휘관의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본문 중(p107)


 

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롬멜은 늘 그랬던 것처럼 지칠 줄 몰랐다. 그는 병참에 관여하는 부대들을 비롯하여
모든 부대들을 찾아다녔다. 그이 모든 명령에는 낙관주의가 배어 있었다... 본문 중(p159)


롬멜은 전선에서 멀리떨어져 있어서 실제 상황도 모르면서 그런 전문을 보낸 사람들에게 크게 화를 냈다.... 본문 중(p229)



1942년 2월 롬멜의 지인인 프리드리히 폰 파울루스 장군이끄는 6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항복을 했을때 상황을 보면 롬멜과 완전히 대조된다.
파울루스는 6군이 이름뿐인 이도시를 더이상 사수할 의미를 찾지못했지만 히틀러의 명령이라면 금과옥조로 여겨 한발짝도 물러나지않았으며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되어 독일군 전체의 전략적인 문제까지 흔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만약 파울루스가 당시 만슈타인인의 겨울폭풍작전으로 만들어놓은 통로와 연결해 자력으로 조금만 움직였어도 6군의 전력을 어느정도 유지해 반격의 기회를 만들수 있었지만 그에겐 단호함이없었다.
반면 롬멜은 트리폴리의 결사항전이냐 튀니지 철수냐를 두고 고심끝에 철수를 결정하게되고 로마로부터 해임을 당하게되지만 그의 병사들의 목숨은 고스란히 보전할 수 있었다.

 

롬멜은 몸을 혹사하여 자신의 건강을 완전히 망가뜨렸다.........중간생략.........몽고메리는 밤잠을 잘 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밤잠을 방해받는 일이 없도록 했다. 그렇게 해야만 항상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본문 중(p299) 


위 내용을 보면 아프리카 전선의 결과야 어찌되었건 재미난 에피소드이다. 



사실 전투는 피곤하다. 특히 현장을 뛰어다녔던 롬멜은 잠잘자는 몽고메리보다는 늘 피곤과 신경쇠약에 시달렸던것이다. 동부전선이 모든 병참과 물자를 빨아들였기때문에 결국 아프리카 전선을 접어야했고 롬멜 스스로도 어려운 상황에서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속도전을 펼치는 방법뿐이였으니 몸이 녹초가될 수 밖에없었던 것이다.


왼쪽부터 에리히 폰 만슈타인, 요하임파이퍼,프리들리히 폰 파울루스,하인츠 구데리안,버나드 몽고메리장군



롬멜이 전범국가의 장군이면서 비난대신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는 카이텔같은 정치군인이기보다 진정한 군인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기때문이다.



히틀러 휘하의 독일군에는 유능한 장군들이 많이 포진되어있었다. 대전초기  그들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고의 기량을 펼치며 전승 행진하고있었지만 히틀러의 지나친 욕심과 의심은 장군들의 재량권을 뺏고 손과발을 묶는 최악의 수를 두기시작했으며, 오랜 대전기간은 연합군에게 시간과 물자 등 모든면에서 유리한 상황을 이끌어주면서 자멸하게된다. 구데리안과 만슈타인 같은 충직한 군인들은 내처지고 아첨꾼들만 들끓던 대전말기의 히틀러최고사령부는 롬멜같은 진취적이고 뛰어난 감각의 장군을 스스로 제거함으로써 패전을 더욱 부채질했다.


Posted by 콩기름
책(book)2010/09/10 15:06

 

이번 연평도사건때문인듯 사무실 밖이 시끌벅적하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광화문 한복판에서 전우회 모임 집회가 열리고 있으며  응징하라! 행동으로 보여줘라! 친북좌파 처단하라! 등등 원색적인 말들이 외쳐지고 있다.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가 노병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으리라.....

이 또한 정확히 60년전 발생했던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이기에  책이 들려주는 숨은이야기들이 더욱더 생생히 전해진다.
책 말미에 동해의 섬과 서해5도가 어찌하여 우리 손에 들어왔으며 지금의 NLL 이 형성되었는지 아주 자세히 알려주고있어 흥미를 배가 시켜준다.

책은..

1. 그들은 천하무적이었나? _ 북한군의 T-34
2. 어둠 속에서 빛난 승전 _ 춘천전투
3. 쓰러지지 않은 용사들의 이야기 _ 강릉전투
4. 굴욕의 고개 _ 죽미령전투
5. 침략자의 선봉 부대 _ 북한군 제6사단  .....등등

굵직하고  의미가 있는 전투들을 테마로 우리가 아직 알지 못했던 일화들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국군이 당시 전투력으로 초기에 일방적으로 밀렸던 것이 아니였다는 점과 고군분투했던 일화 그리고 북한군의 미숙했던 전략 전술이 드러나있다.




Posted by 콩기름
책(book)2010/07/07 15:47


아이가 쑥쑥 커가면서  그 시기에 맞는 육아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이가 있기전엔 그냥 냅두면 저절로 크는줄 알았는데  막상 키우려니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안가는것이 없다. 
결국 이런저런 책에서 지식을 얻어본다.

육아를 하면서 나에게 제일 먼저 요구하는건 내시간을 모두 달라는 것이였다.
저녁마다 하던 PC게임,  영화받고 보기, 늦잠자고 늦게일어나기, 밀리터리의모든것 구경하고 사들이기 등등   이젠 옛말이되어버렸다. 
어느새 내 취미는 뒷전이돼고 하나둘 밖으로 밀려나고 지하로 내쳐지고 계단으로 쫓겨났다.

그래도 그럴수 있는건 그것들을 잠시 미룰 수 있을 만큼의 크나큰 기쁨이 나에게 찾아온것이다.  하늘에서 천사가.........

뉴스에서 흔히만나는 반인륜적인 패륜아를 보면 그에대한 의견들이 분분하다.
 아이는 태어나면서 인성을 갖춰나온다는 말은 어느정도 수긍하지만, 후천적인 환경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만큼 육아는 한 아이가 어른이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게 버티목 역할을 하는 중요한 일이 될터인데 소홀이 다룰순 없는 일 아닌가.


얼마전 절친형과 같이 봤던 TV로 책을 토론하는 프로그램이였는데... 거기서 이책을 주제로 전문가들이 토론을 하고 있기에 호기심에 사서 보았다.

어떤 인간이든 자아가 형성되고 정체성을 갖춰나가면서 개똥철학 하나정도는 갖고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길러내는 육아에서 철학을 빼놓을 순 없다.

이책은 디테일한 육아법을 알려주지않는다.
다만 부모이기때문에 아이에게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고 훈육하는 오류를 지적하고있으며,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써 인정함과 동시에 앞에서 아이를 끌어당기기보다 한발짝 뒤로 물러나 지켜보면서 문제가 생길때만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올바른 길을 안내하는 역할정도로도 충분함을 지적한다.

워낙에 가볍게 접근한 책이라 그런지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명언은 개인적으로 그닥 와 닿지 않아 괴리감이 들었지만  큰 테마마다 한가지씩 중요한 정보를 얻어간 책이였다.

 


Posted by 콩기름
책(book)2010/04/27 11:49


6.25 60주년을 맞은 올해.... 나는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있다.  그 어느때보다 관련 서적들과 자료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접한 '대전쟁'은 백골부대(현 중부전선 3사단)출신 김종민장교의 6.25 참전기가 실려있다.  지금까지 6.25에 대한 큰그림의 접근만 있었지 초급장교의 피비린내나는 살아있는 최전선 이야기는 접하기 어렵던 터라 오히려 신선했다.

얼마전에 읽었던 백선엽 1사단장의 '군과나'역시 고급지휘관으로 주로 전선 후방에서 전략 전술을 지휘하는 큰그림을 그렸던 장군인 만큼 총탄이 빗발치며 사투를 벌이는 전선 냄새는 조금 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은이는 일제치하에서 부터 해방과 더불어 6.25전쟁 전후의 대한민국 근대사를 함께한 산증인으로 당시 시대상과 삶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글을 실어놓았다.

이책에서도 언급했지만 6.25전쟁은 일요일 새벽에 잠자다가 갑자기 당한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계속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백장군은 그점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이분은 의구심을 과감히 화두에 던져넣었다.

해방후 3.8선이 그어지고 남침이있기 바로전까지 의문투성이의 사건들이 너무나 많다. 

1. 각 전선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침략행위에대한 보고에 대한 상부의 묵살
2. 6.25가 터지기 바로전에 그동안 묵어두었던 외출 외박해제(당시 전군30% 휴가중)
3. 6.25가 터지기 바로전에 있었던 전선지휘관들의 보직개편과 전선관할구역 교체
4. 6.25가 터지기 바로전에 전선을 비우게한 고급지휘관들의 회식모임(다행히 춘천 김종오사단장은 못옴: 후에 북한 2,7사단 3일막아냄)
5. 전방을 비롯한 전군의 중화기를 갑작스레 병기창에 입고시킴
6.전방사단의 후방이동 지시..

이러한 현상은 분명 수뇌부에 배신자가 있었던것이 틀림없다...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안 사실은 12.12사태 당시 육군참모총장 이던 정승화계엄사령관이 지은이의 대대장으로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웠다
전두환에게 아무 힘없이 연행되던 무기력한 사령관으로 비쳐졌던 그가 6.25때 누구보다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뛰어난 전선 지휘관이였다는 사실은 새삼 그를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대목이였다.

한가지 현상에 대해 여러시각으로 접근하는것 만큼 객관적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6.25같은 전쟁을 같은시대에 경험하더라도 어느곳에서 무엇을했느냐에 따라 생각이 다를터인데 나는 책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간접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르겠다.

 6.25을 경험했던 세대가 점점 스러져가고있다.  지금 보다 현장감이 느껴지는 사병들과 초급장교들 이야기나 체험담들이 보다 많이 글로엮어져  후대에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Posted by 콩기름
책(book)2010/02/16 15:31

2차대전 독일군 최고지휘부와 야전사령관들은 군사마니아들에게 연구대상이다. 많은 추축군과 연합군 장군들중 유난히
독일장군들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는건 왜일까?....
 
이 책을 읽어보면 어느정도 답을 얻을 수 있다. 

한 나라의 군은 결국 정치가의 수족이 될수 밖에없다. 그것이 군의 존재이유고 이를 따르지않으면 당시로써는 살아남지 못했다.  1차대전 후 피폐해진 독일을 ...히틀러는 파시즘을 든 나치당을 앞세워 일어섰고,  민중들은 이에 열광했다.

당시로써는 너무나 불합리한 베르사이유조약을 걷어차고 국민들을 이끌어줄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를 원했고, 군부 또한 기를 살려줄 히틀러가 안성맞춤인 대통령이자 총리인 총통이 탄생한것이다.

하지만 반대세력이 있게 마련이고 군부역시 나타난다.  반히틀러의 성향을 지닌 장군들은 항명과 함께 가차없이 군복을 벗었고 군인으로써의 자존심을 지킨 반면, 야전의 우수한 지휘관을 잃은 군과 독일로써는 독이였던 샘이다.  이에 정치와 결탁하여 군에 남아있었던 우수한 지휘관들도 있었지만 군주는 쓴소리와 단소리를 같이 낼수있는 신하들 두어야한다는 철칙을 무시한 히틀러는 곁에서 비위나 맞추는 인물들로 포진시켜 전쟁을 치루게 된다.
그렇다고 히틀러주위에 어리석은 장군들만 남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쩌면 더 현명하게 상황을 예의주시하여 자신이 사라져 조국에 손해가 될바에야 잠시 머리를 숙여 후일을 기약했던 장군들도 있어 전쟁은 결국 더 길어지게 되었다.

히틀러주위에는 대전과 내전을 통해 경험을 쌓은 우수한 인재들이 많았지만  무리한 전쟁과 보헤미안 하사의 졸지휘로 인해
결국 파국을 맞게 되었다.

이책은 당시 2차세계대전을 주무르던 10명의 독일최고사령부, 육군최고사령부에 소속된 참모, 야전 최고지휘관들의 이야기가 실려있어 관심이있는 일반인들은 흥미로울수 있으나, 매니아들에게는 이미 나와있는 자료의 총정리 정도의 느낌이 든다.

호트나 잘알려지지않은 장군들이 등장하여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결국 1차적인 자료의 평이한 수준이여서 조금 아쉬웠다.


Posted by 콩기름
책(book)2009/08/13 11:38



역사에는 권력에 아부하거나 무서워하지않는, 자기뜻을 소신있게 펼치다 빛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전략가들이 많이있다.
아마도 이 책에 나오는 장군들이 대체로 그런 성격을 가진 강직하고 우직한 신념의 사나이들이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우국충절이야 말로 나라와 국민을 위했던 진정한 영웅인 것이다.

10명의 역사속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1.위대한 지(知)장 만슈타인
2.신념의 지휘관인 스미스
3.황제의 남자인 야율초재
4.기갑부대의 아버지  구데리안
5.사형수였던 장군 로코소프스키
6.백마고지를 지킨 김종오
7.초원의 전설 묵특
8.러시아 군인에서 핀란드 대통령으로 만네르헤임
9.불독이라 불린 장군 워커
10.선지자의 유언 슐리펜 이다

 한두명을 제외하곤 익히 알고있던터라 책 제목인 '히든 제너럴'이란 표현을 쓴 저자의 의도를 알수 있었다.
밀리터리나 역사서에 관심이 있는사람이라면 이들의 리더십과 예지안에 매혹을 느꼈을 것이고  전범신분이든 조국의 배신자던
 패장이던.... 많은 이들이 그들의 정신에 자연스러운 존경의 맘을 보낼것이다.

독일의 장군중에는 사막의 여우 롬멜을 모르는이 없지만 만슈타인과 구데리안같은 명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않다.
하지만 2차대전의 분수령을 맞이했던 사건에는 모두 이 두 장군이 개입되어있었으며 그만큼 독일전세에 큰힘이되었지만
정치꾼 히틀러는 측근들에의해 눈과 귀가 멀어 심각한 작전개입으로 인해 이들과 끝없는 마찰을 일으켰으며,
결국 지휘관자격을 박탈하고 만다. 구데리안장군은 후방에서나마 조국을 위해 봉사 할수 있었지만,  만슈타인 장군은 끝내 복직하지
못하고 종전을 맞이한다.

아직까지 좀 아쉬운건 만슈타인과 구데리안  6군의 파울루스 등등 전선에서 싸운 장군들의 자세한 회고록이나 디테일한 전사를
다룬 책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이정도 내용으로 충분히 흥미를 느끼지만 좀더 깊이있는 내용을 만나고 싶은
맘이 간절한건 왜일까...

저자는 블로그 august 의 軍史世界 를 운영자이다. 이분을 만나보지못했지만  '교과서는 못 가르쳐주는 발칙한 세계사' 라는 책
이 한권더 있다고 하니 꼭 읽어보고 싶다.

Posted by 콩기름
책(book)2009/08/12 15:41

아직 생존해 계신 백선엽장군이 3번째 출판회에 나오셔서 싸인회를가지고있다




 한국전쟁관련 책을 뒤지다가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을 발견했다.  이번이 세번째 출판이라는데그 동안 한번도 접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나도 참 게을렀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펼치면 6.25 전쟁 개전부터 휴전까지 야전지휘관으로써 전장을 누비며 몸소 경험했던 사실이 영화로 보는듯
눈앞에 펼쳐진다. 어쩌면 현장에 있었기에 더욱더 화약냄새나는 생생한 기록이 묻어있는지도 모른다.

당시 1사단장이였던 백장군은 서부전선에서 북한군을 저지못하고 중부전선과 같이 붕괴되어 서울로 밀려들어갔다.
그나마 탈출할수있는 인도교또한 서둘러 폭파되는바람에 민간피난민은 물론 후퇴해 전열을 가다듬어야할 국군마저
강북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고, 군인들은 장비를 모두 버리고 구사일생으로 각자 소개해 한강 남쪽에서 집결한다.

전쟁이발발하면서 사단 최전방에 갔던 백장군은 막  다리를 건너오려는 북한군을보며 다리폭파를 공병대에 지시했지만
터지지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전진을 도운꼴이되었으니 당시 우리 국군의 형편이 어떠했는지 짐작이간다.
동부전선의 김종오 사단장의 처절한 저항으로 시간을 조금 벌었지만 이내 수도서울을 내주면서 남으로 남으로 후퇴하는 국군

맥아더의 참전으로 스미스부대(2차대전후 주일미군으로 미24사단소속 21연대 스미스중령 휘하부대)가 급하게 일본에서 왔지만 죽미령에서 매복 기습을 시도하다가 t34/85 무장한 북한군에 두들겨맞고 대패했다. 이때가 미군과 북한군이 최초로 교전한 시점이며
미군도 북한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했음을 알게되는 계기가 된다.

백장군 또한 없는 병력에 수시로 반격해 시간을 조금씩 늦춰보지만 이미 기울어진 전세을 역전시킬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결국 낙동강
전선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보급물자와 유엔지원군이 도착할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데...

백장군은 한국군으로써는 유일하게 미군과 같이 작전을 수행했으며 화력지원은 물론 고위지휘관들로부터 대폭적인 신뢰를
받아 큰그림을 그리며 전황에 대응하는 기회를 많이 가졌다.
무엇보다 영어를 구사하는 능력과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 꼭 필요하다면 자기를 굽혀서라도 부하장병들을
살려내는데 서슴치않았으며 단순히 출세가도가 아닌 진정한 직업정신에서 오는 사명감으로 임무를 완수해 많은이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얻었다.

백장군은 국군이 탄생한 이례로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보(한)전(미)합동작전을 처음 운용했으며. 국군최초의
4성장군이기도하다.

지금 살아계신 백장군은 살아있는 역사 되시겠다.

1946.02 - 국방경비대 육군부위(중위) 임관     
1947.01 - 제5연대 연대장     
1948.04 - 통위부 정보국 국장     
1949.07 - 1950.04 제5사단 사단장        
1950.04 - 제1사단 사단장     
1951.04 - 1952.07 제1군단장 (육군 소장)        
1951.07 - 휴전회담 한국대표     
1951.11 - 백 야전전투사령부사령관     
1952.04 - 제2군단 군단장     
1952.07.23 - 1954.02.13 제7대 육군참모총장(대장)     
1953.01 - 초대 육군대장        
1954.02 - 1957.07 제1야전근사령관        
1957.07.23 - 1959.02.13 제10대 육군참모총장(대장)     
1959.02 - 1960.05 제4대 연합참모본부 총장(육군 대장)     
1960.08 - 1960.06 예편(대장)        

ps: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백장군이 만주군 간도특설대 즉 항일무장독립군 토벌임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머리가 좀 혼란스러워졌다.  아무리 6.25 전쟁 영웅이라지만 역사는 역사다. 친일 행각을 덮는건 언어도단이다.
군과나를 읽으면서 놓친부분을 다시 보니 미화되어 표기되어있는 부분을 볼수 있었다.
안타깝지만 내가 젤 싫어하는 일본군 장교였다니...........더 이상 할말이 없다..속은 기분이 든다
Posted by 콩기름
책(book)2008/10/28 13:56



우리는 남경대학살보다는 난징대학살로 많이 알려져있다. 
지금까지 대충만 들어알고있던 역사적 사실을 책으로남아 훑어 보는내내 일본의 야만적인 잔혹행위에 하루에도 몇번씩
끓어오르는 분노를 식히곤했다.
1937년 당시 중국은 모택동(공산당)과 장개석(국민당)의 내전이 한참이였다.  장개석이 모택동을 몰아부쳐 구석으로 쫓아내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는 동안 일본은 중국을 송두리째 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차, 우연치않게도 장개석이 투옥되는 사건(시안시건)이 발생 이를 틈타  중국을 본격 침략하게 된다. 

하는수없이 풍전등화에 놓인 중국을 구하기 위해 장개석을  풀어주고 제2차 국.공 합작을 통해 일본에 대항해보지만 장개석의
지방군벌은 부패와 자기몸사리기에만 바빠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허물어진다.
결국 수세에 몰린 장개석은 난징에모여 전열을 가다듬고 항전하려했으나 맞설 틈도없이 일본군에 대패하고 도주한다.

결국 중앙군만 믿고있던 난징의 시민들은 일본의 야수들에게 그대로 노출된채 30만명이나 없이없이  학살을 당해야했다.
그들은 난징시민들을  칼로베고, 찌르고,  총검술연습용으로 사용하고. 자루에넣고 휘발유를 뿌려 불붙이고,  남자들을 철조망으로 한군데 묶어 하천에 몰아넣어 기관총으로 난사하고,  생매장하는 등등 이루 말할수없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더 가슴을 아프게하는건 난징대학살을 다른말로 난징강간사건이라고도 할만치  젊은여성은 물론 여자아이와 할머니까지 무차별적으로 강간당하게된다.  
정말이지  인간으로 태어나  그같은 만행을 저지른 일본인이 같은 인간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았다.   아무 죄없고 힘없는 여성들은
그렇게 악마와 야수같이 굶주린  일본군에게 유린되어 안타깝게 사라져갔다.

그때 당시 증인들은 하늘에서 피빗이 내렸다고 할만큼의 피가 온 도시와 강을 물들였다고 한다.

장개석은  중국인들을 총화단결시키키위해 일부러 남경을 일본군에게 방치했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어처구니가없었다.
아마 훗날 모택동에게 쫓겨 대만으로 도망가게된 것도 이렇듯  중국 인민들에게 신망을 받지 못해 그랬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나는 예전에 개인적으로 일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도 감정이입이 빠른 내성격에  역사공부탓인듯했다.  그러나 세계는 지구촌으로 하나가 되고 글로벌화되어가는 전후세대인 내가 너무 고리타분하게 놀순없어  점차  그런마음은 누그러졌고  지금은 여행가고싶은 곳중에 하나가되었다.
하지만 역사만큼은 절대로 잊어선 안되며   누군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고했다
우리는 이땅에 인간으로 태어나  짐승만도 못한 잔혹행위를 이땅에게 근절해야한다.

너무 너무 끔찍한 사건이다.......

Posted by 콩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