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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

롬멜에게서 배우는 리더십


롬멜은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장군이다.
별명과 같이 꾀가 많아 전장을 능수능란하게 누비고 다녀 얻어진것이지만, 그만큼 자기에게 철저하고 적과 아군에게 존경받았다는 의미이기도하다.


오늘날 정경계의 화두는 단연 리더십이다. 한사람의 리더십으로 나라와 기업의 흥망이 결정지어지는 전문ceo 시스템은 이렇듯 전쟁을 치르는 장군들에게서 많은것을 배우게한다.
특히 롬멜과 같이 프로이센 귀족출신이 아니면서 독일핵심 주류에 들어간 자수성가형은 모든이들의 본보기가 되고있다.


아무리 유능한 장군이라도 다양한 재능을 한꺼번에 가지긴 힘들지만 롬멜은 이를 충족게 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롬멜은 1차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하위장교로써 일반사병들과의 소통을 통해 많은것을 익히고 배웠다.
부대를 지휘할때는 언제나 앞장서 솔선수범했으며, 막연한 정보보다는 눈으로 보는 철저한 정찰을 통한 공격은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1차세계대전에 패하면서 체결된 굴욕적인 베르사이유 조약은 막대한 배상금과 군병력의 축소로 이어 졌지만 그는 군에서 남게되어 좀더 폭넓고 깊이있는 지휘관의 소양을 익히게되었다.


2차대전의 그림자가 본격적으로 드리워지면서 프랑스침공 슐리펜계획이 만슈타인에의해 낫질작전으로 바뀌면서 롬멜은 7기갑사단으로 선봉에서 유령사단이라는 별명을 또 얻게된다.
당시 독일은 기갑과 차량화를 통해 전격전을 펼쳐 적을 혼란에 빠뜨리며 우회기동을 통해 상대를 제압하는 속도전을 보여주었다.


반면 추축군의 동맹이던 이탈리아는 아프리카로 진출해 땅따먹기에 열을 올리고있었지만 허약한 체질이라 영국의 상대가 못돼 결국 히틀러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이때 롬멜이 북아프리카로 파견되면서 그의 화려한 진면목이 펼쳐지게된다.
롬멜의 임무는 전장을 확대시키기보다 선전용도구로 여기는 이차전선이 될것이 뻔한일이였지만 롬멜은 전혀 그럴생각이없었으며 그는 이집트까지 진격한 다음 그곳에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통해 위로 올라가 카프카스 지역의 소련군을 위협할 생각이었다.



솔선수범하고 자기가 할수없는 일은 부하들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그의 지휘 방식이었다.
롬멜은 늘 전투에서 가장 결정적인 지점에 있고 싶어했으며, 대개 인격과 카리스마를 통해 상황을 풀어나갔다....본문 중(p81)



이대목을 보면 롬멜의 저돌적인 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급장교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자세지만 더큰 그림을 그리는 장군으로써는 지휘부에서 하급부대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분석해 적시적소에 부대를 운영함이 더 바람직할것이다.



기갑사단의 장교라면 명령을 받을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전체 작전계획의 틀 안에서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한다...본문 중(p92)

 

독일 장교중에 롬멜과 같은 생각과 지휘방식으로 전과를 많이올린 초급장교로 요하임파이퍼 중령 문득생각난다. 그는 무장친위대 이지만 전격전이 무엇인지 간파했으며 전차운용면에있어서 항상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며 상부로부터의 명령이 현장과 맞지않으면 사후보고하는(약간 제멋대로).. 시간이 곧 목숨임을 알고 있었던 군인이였다. 전후에 말메디학살의 책임을 물어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SS의 몇안돼는 뛰어난 군이이다.

 

유령사단인 제7기갑사단이 거둔 전공들은 전직 보병이 탁월한 기갑부대 지휘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그의 추진력과 결단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그이 용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언제나 앞장서서 진격 속도를
유지하고 주도권을 뒤고 적이 적시에 반격을 하지 못하게 막는 지휘관의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본문 중(p107)


 

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롬멜은 늘 그랬던 것처럼 지칠 줄 몰랐다. 그는 병참에 관여하는 부대들을 비롯하여
모든 부대들을 찾아다녔다. 그이 모든 명령에는 낙관주의가 배어 있었다... 본문 중(p159)


롬멜은 전선에서 멀리떨어져 있어서 실제 상황도 모르면서 그런 전문을 보낸 사람들에게 크게 화를 냈다.... 본문 중(p229)



1942년 2월 롬멜의 지인인 프리드리히 폰 파울루스 장군이끄는 6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항복을 했을때 상황을 보면 롬멜과 완전히 대조된다.
파울루스는 6군이 이름뿐인 이도시를 더이상 사수할 의미를 찾지못했지만 히틀러의 명령이라면 금과옥조로 여겨 한발짝도 물러나지않았으며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되어 독일군 전체의 전략적인 문제까지 흔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만약 파울루스가 당시 만슈타인인의 겨울폭풍작전으로 만들어놓은 통로와 연결해 자력으로 조금만 움직였어도 6군의 전력을 어느정도 유지해 반격의 기회를 만들수 있었지만 그에겐 단호함이없었다.
반면 롬멜은 트리폴리의 결사항전이냐 튀니지 철수냐를 두고 고심끝에 철수를 결정하게되고 로마로부터 해임을 당하게되지만 그의 병사들의 목숨은 고스란히 보전할 수 있었다.

 

롬멜은 몸을 혹사하여 자신의 건강을 완전히 망가뜨렸다.........중간생략.........몽고메리는 밤잠을 잘 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밤잠을 방해받는 일이 없도록 했다. 그렇게 해야만 항상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본문 중(p299) 


위 내용을 보면 아프리카 전선의 결과야 어찌되었건 재미난 에피소드이다. 



사실 전투는 피곤하다. 특히 현장을 뛰어다녔던 롬멜은 잠잘자는 몽고메리보다는 늘 피곤과 신경쇠약에 시달렸던것이다. 동부전선이 모든 병참과 물자를 빨아들였기때문에 결국 아프리카 전선을 접어야했고 롬멜 스스로도 어려운 상황에서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속도전을 펼치는 방법뿐이였으니 몸이 녹초가될 수 밖에없었던 것이다.


왼쪽부터 에리히 폰 만슈타인, 요하임파이퍼,프리들리히 폰 파울루스,하인츠 구데리안,버나드 몽고메리장군



롬멜이 전범국가의 장군이면서 비난대신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는 카이텔같은 정치군인이기보다 진정한 군인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기때문이다.



히틀러 휘하의 독일군에는 유능한 장군들이 많이 포진되어있었다. 대전초기  그들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고의 기량을 펼치며 전승 행진하고있었지만 히틀러의 지나친 욕심과 의심은 장군들의 재량권을 뺏고 손과발을 묶는 최악의 수를 두기시작했으며, 오랜 대전기간은 연합군에게 시간과 물자 등 모든면에서 유리한 상황을 이끌어주면서 자멸하게된다. 구데리안과 만슈타인 같은 충직한 군인들은 내처지고 아첨꾼들만 들끓던 대전말기의 히틀러최고사령부는 롬멜같은 진취적이고 뛰어난 감각의 장군을 스스로 제거함으로써 패전을 더욱 부채질했다.